번역본과 원문을 같이 두는 태도 — 겸손한 읽기

작성 김진호 · 2026-07-22 · 김진호 연구소

여러 언어의 성경을 나란히 둔 겸손한 읽기

번역은 다리입니다. 다리는 강 자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딩동은 한 번역만 절대화하지 않고, 가능한 자리에서 원문과 다른 언어를 함께 둡니다. 한 단어가 다른 말로 어떻게 울리는지를 나란히 볼 때, 익숙해서 흘려보내던 말씀이 다시 마음을 두드립니다.

이 태도는 학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일반 독자에게도 ‘이 단어가 다른 말로 어떻게 울리는지’를 보여 주는 겸손한 읽기를 돕습니다. 논쟁에서 이기려는 도구가 아니라, 이해의 폭을 조금 넓히려는 초대입니다. 초대에 응하는 속도는 각자 다르고, 그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좋은 도구의 태도입니다.

교단·번역본 선호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딩동은 특정 교단의 공식 입장을 대행하지 않습니다. 공개된 본문과 출처를 드러내고, 읽는 이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원문 표기가 낯설면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됩니다. 눈으로 형태만 따라가도 의미가 있습니다.

비교 화면이 어려우면 한글만 읽어도 됩니다. 글자 단수는 기기와 시력에 맞게 조절하고, 필요할 때 칸을 늘리면 됩니다. 읽기 편안함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강요 없는 단계가 오래 갑니다. 번역 비교는 우열을 가리는 싸움이 아니라, 이해의 층을 더하는 초대입니다.

예컨대 ‘평안’이라는 한 단어도, 원문의 결과 영어의 어감을 나란히 보면 ‘그저 조용함’을 넘어 ‘무너진 것이 온전히 회복된 상태’라는 깊이가 드러납니다. 생업에 지쳐 ‘평안하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던 사람도, 그 단어의 본뜻을 보면 다시 마음이 움직입니다. 번역을 나란히 두는 겸손한 읽기는 그렇게, 익숙한 위로의 말에 잃었던 무게를 되돌려 줍니다.

겸손한 읽기가 쌓이면, 말씀은 구호가 아니라 동행이 됩니다. 그 동행을 위해 병치를 택했습니다. 어려운 말로 사람을 누르는 대신, 여러 언어의 결을 나란히 두어 각자의 마음이 열리는 지점을 스스로 찾게 하는 것. 그 겸손이 결국 지친 한 사람을 말씀 앞에 오래 머물게 하고, 그 머무름이 사람을 살립니다.

원문을 안다고 우월한 신앙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병치는 지식을 뽐내는 장치가 아니라, ‘내가 아는 이 한 줄에도 더 깊은 결이 있구나’를 깨닫게 하는 겸손의 도구입니다. 그 겸손 앞에서 사람은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고, 자기 하루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말씀을 여러 언어로 나란히 두는 일의 진짜 열매는, 바로 그 부드러워진 마음입니다.